청와대에 들려주고 싶은 '살둔' 이야기 - 문갑식 칼럼

2주쯤 전에 나온 살둔제로에너지하우스 관련 칼럼기사입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문갑식의 세상읽기] 청와대에 들려주고 싶은 '살둔' 이야기

문갑식 선임기자 | 2013/07/23 03:05

 

박근혜 대통령이 오는 29일부터 82일까지 휴가를 간다. 45일이다. 그 뉴스가 전해지던 날 후배 PD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그 기간 청와대에 남아 있는 직원들이 혹시 냉방기 틀까요? 대통령 몰래."

 

청와대 에어컨은 올 들어 한 번도 가동되지 않았다. 서울 최고기온이 30도를 웃돌 때도 그랬다. '찜통 청와대' 맛을 본 대열에 외빈(外賓)들도 있다. 페이스북 공동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와 탕자쉬안 중국 전 국무위원이다.

 

박 대통령만 유독 더위에 강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고집을 부리는 것을 보면 몇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먼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근검(勤儉) 교육'이다. 부채로 더위를 식혔다는 아버지와 관련해선 일화가 적지 않다. 어느 여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박정희 전 대통령을 보고 부하가 몰래 에어컨을 가동했다가 혼난 이야기며, 외국 군수업자가 대통령의 부채질을 보고 에어컨비()를 건네자 "그 돈만큼 무기를 달라"고 답했다는 얘기다.

 

위아래 할 것 없이 직원들이 줄줄이 구치소로 끌려간 한수원 사태 탓도 있을 것이다.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불신에 부품 위조까지 겹쳐 대정전(大停電·블랙아웃)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솔선수범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몇 달은 더위를 숙명처럼 안고 가야 할 대통령과 부하들에게 강원도에서 본 사례를 알려주고 싶다. 홍천군 내촌면에 살둔마을이란 곳이 있다. '살둔'은 높은 산과 깊은 내에 둘러싸인 외진 곳이지만 '사람이 살 만한 둔덕'이란 뜻이다. 폭염(暴炎) 작열하던 날 그곳을 찾았는데 하필 기온이 섭씨 38도로 전국 최고였다.

 

이대철(李大徹·68)이 지은 '제로에너지하우스'9700평 대지에 50평 남짓한 집과 100평가량의 목공실로 구성돼 있다. 놀라운 것은 안으로 들어섰을 때 느껴진 냉기(冷氣)였다. 25도 정도로 밖과 13도나 차이가 났다.

 

비결은 단열(斷熱)이었다. 여름엔 열기가 안으로 스며들지 않게 하고, 겨울에는 한기를 막으며 내부의 열이 새는 것을 막는다. 그는 자기 집 단열률이 90%로 여름·겨울철 전기료가 한 달에 5만원 정도밖에 안 든다고 했다.

 

이대철은 대우에 입사해 인도네시아에서 삼림 조사 일을 했다. 정글에 살며 베어낼 목재의 양과 질을 파악하는 고달픈 직업이다. 온갖 독충과 맹수에 외로움까지 견뎌야 하는 일이기에 연봉은 높지만 중도 포기자도 많았다.

 

10여년 회사 생활을 마치고 기계 수입업을 하던 그는 경기도 용인에 전원주택을 지었다. 좋아하던 목공을 계속할 공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널찍한 터에 멋진 통나무집 짓고 거기다 통창을 달아놓으니 자연이 제 것 같았다.

 

문제는 거기부터 생겼다. 여름엔 더워 견딜 수 없고 겨울은 추워 살 수 없었다. 전기로 냉난방하자니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전원주택 생활의 본령(本領)을 맛본 거지요. 원인을 찾기 시작했는데 범인이 창문이었어요."

 

시원한 창은 방문객만 부러워할 뿐 거주자를 괴롭힌다. 단열법을 독학하다 내친김에 에너지 관련 서적을 탐독하던 그는 '2025년 석유 위기설'을 접한다. 우린 음모론 정도로 여기지만 외국에선 심도 있게 연구되는 분야다.

 

그는 시행착오를 거듭하다 마침내 홍천으로 옮겨 제로에너지하우스를 지었다. 원하는 이들에게 세미나로 경험을 전하고 시공도 하는데 그의 주장은 한 가지다. "원전이나 신재생에너지를 논하기 전에 아끼자"는 것이다.

 

한국처럼 '여름에 긴 팔 입고 겨울에 반소매 입는 식'으로 에너지를 낭비하는 나라는 없다. 디자인을 앞세워 건물 외관을 온통 유리로 장식해 단열과 동떨어진 건물이 줄을 잇는다. 모든 것이 에너지와 연결되는데도 말이다.

 

그러면서도 휘발유 1L 가격이 2000원만 넘어서도 못 살겠다고 난리 친다. 전력 대란으로 전전긍긍하다가 계절 바뀌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망각하는 것도 우리다. 에너지 소비 대국이면서 중요성은 이해하지 못하는 나라다.

 

이대철이 말했다. "기업이 CEEO(에너지 최고 관리자)를 신설해야 해요. 연봉 1억 줘도 10배 효과는 낼 겁니다. 삼성 같은 곳은 그 이상도 가능해요. 그런데도 무시하는 건 최고경영자가 에너지 문제에 둔감하다는 뜻입니다."

 

그와 만난 뒤 에너지경제연구소 창립 기념 세미나에 패널로 참가한 적이 있다. 주제 논문이 하나같이 억() 또는 조() 단위에 최소 10년 이상이 걸리는 원전 건설과 태양광, 조력(潮力) 및 풍력발전에 관한 것이었다.

 

거기서 제로에너지하우스의 사례를 들었더니 연구소 관계자가 세미나가 끝난 후 웃으며 말했다. "저희도 절약이 중요한 건 알아요. 그런데 문제가 있어요. 원전, 태양광을 말하면 스폰서가 붙는데 절약엔 안 붙거든요."

 

혹시 우리 대통령과 정책 당국자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절약' 운운하는 게 구닥다리 같고 창조경제와 역행하는 것처럼 보여서 그런 건 아닌지.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아끼는 것은 빠르면서도 효율적인 반면 돈 쓰고 짓는 것은 느리면서도 비효율적이란 사실이다.

 

조선일보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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